박지선 죽음, 지병인 피부병은 햇빛 알레르기, 그리고 엄마의 유서

자꾸 눈물이 난다. 개그우먼 박지선씨와 어머님이 꼭 좋은 곳에 가셨기를 빌고 또 빌어본다.

난 평소 연예인의 죽음에 무감각한 편이다. 아마 그분들의 삶을 잘 알지 못하기에 공감하는 분모가 적어서 일것이다. 이 세상에 가벼운 죽음은 없다. 단지 내가 잘 모르는 분들이기 때문에 '왜, 이렇게 젊은 나이에'라는 아쉬움과 아픈 사람들은 하루라도 더 살려고 몸부림치는데 '그래도 살지'라는 안타까움이 앞섰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옆에서 젊은 지인의 죽음을 보았었고 연이어 나의 재발을 경험하고나니 나 또한 죽음이라는 단어와 늘 한 발 더 가깝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에, 누군가가 간절히 원하는 삶을 스스로 마감한 사람들에 대해 시선이 마냥 곱지만은 않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상하게 개그우먼 박지선의 죽음은 처음부터 계속 눈물만 났다. 박지선을 잘 알지도 못하는데 오늘도 몇 번을 검색창에 박지선 이름을 넣어 새로 뜬 뉴스를 누르면서 눈물을 흘렸다. 나는 왜 자꾸 우는걸까? 그냥 36살의 꽃다운 아가씨가 너무 안타깝다고 말하기에는 복합적인 감정이 숨어있다.  "18살, 피부과 오진, 손발 묶고 잤다" 라는 박지선의 이야기. 그리고 과거 인터뷰를 찾아보면 피부 질환 때문에 고등학교 2학년 때 피부과 시술을 받은 후 피부가 완전히 뒤집혀 그 이후 학교조차 제대로 다닐수 없었다고 한다. 결국 지병인 피부병 상태가 악화된 6개월간 출석 확인만 받은 뒤 조퇴하는 생활을 했다고 한다. 다들 알겠지만 이렇게 학교를 엉망으로 가는 상황은 학생이 정말 개망나니거나 정말 정말 몸이 불편한 경우다. 박지선은 당연히 후자다. 그 상황에서도 박지선은 고려대학교 교육학과를 갔다고 한다. 공부를 잘 한다는 건. 사실 노력을 엄청 한다는 이야기이다.





죽음의 원인에 대한 말이 이래저래 나오면서, 혹자는 피부병, 햇빛 알레르기가 뭐라고 그것때문에...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런 말이 나오지 않는다. 나는 암환자이고 슬픈 기억들이 있지만 꽃다운 젊은 시절, 가장 괴로웠던 기억은 회사 스트레스로 인해 하루아침에 뽀얗던 얼굴이 말 그대로 여드름으로 뒤덮였던 사건이다. 스트레스로 인한 피부병이었다.  벌써 20년도 더 지난 이야기라 기억도 흐릿하지만 어느 정도였는가 하면. 두어 달 만에 나를 만난 사람들은 모두 나를 보고 깜짝 놀라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내 손을 잡고 물을 정도였다. 내가 근무하는 지점(나는 당시 대기업을 다녔고 대기업에서는 다른 기업으로 자사 직원들을 파견했다)으로 우연히 방문하셨던 내 직속 팀장님도 내 얼굴을 보고 (당시 업체 재계약 등으로 힘든 시점이었다.) 내가 아무말도 안 했는데도 "본사나 다른 곳으로 발령을 내주겠다"고 했다. 뭐, '팀장이 마음씨 좋은 사람이었네!' 라고 넘어갈 수도 있지만 당시 시간이 급해 탄 택시에서 처음 본 택시 아저씨까지 "아가씨, 그렇게 심각한 여드름은 그냥 없어지지 않아"라는 조언을 시작으로 가만히 듣고 있던 내가 만만했는지 "결혼을 빨리 하면 피부병을 나을 수 있다.(남녀 관계를 하면 나을 수 있다는 이상한 논리)"는 망언까지 들을 정도였으니 그때 내 여드름도 정상적이진 않았다. (사실 아저씨 표현은 훨씬 더 적나라했다.)


결국 나는 역삼동 본사로 발령난 후, 바로 인근의 엄청 잘 나가는 피부과에 가서 레이저 치료와 처방 약을 먹었다. 처방약. 아마도 스테로이드제일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몸에 나쁘다는 것은 잘 하지 않는 나는 그림같이 멋진 피부과 상담실에서 역시 그림같이 온화한 기계적 미소를 띈 피부과 원장님에게 반신반의하며 물었다. "먹는 약이 효과가 좋다던데, 부작용은 없는 거지요?" 의사는 기계적 미소는 지우지 않고 단답형으로 되물었다. "임신, 출산 계획 없으신거 맞지요?"라고. 그 말 외에는 아무말도 듣지 못했다. 임신과 출산시에는 절대 먹으면 안 되는 약인 것이다. 걱정이 됬지만 당시 남친없는 솔로였던 나는 더 이상 이 얼굴로 사람 많은 본사에서 버틸 자신이 없어 약을 먹었다.  그 약은 정말 효과 직방이었다. 나는 운좋게도 두 세 달 먹고 그래도 원래의 얼굴로 비슷하게 돌아갈 수 있었고 계속 먹으면 백옥같은 피부를 유지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혹시라도 내 몸에 남아 나중에 임신, 출산에 영향이 있을까봐 (나는 걱정을 사서 하는 스타일이다.) 남자친구가 여전히 없었음애도 불구하고 약을 더 이상 먹지 않았다. 



박지선의 죽음을 보면서 이때의 기억이 떠오른건 박지선이 평생 느꼈던 고통에 비하면 정말 새발의 피지만. 그래도 내 20대에 여드름 사건은 (약 1년 정도 없어지지 않았다) 지금도 아픔으로 기억된다. 매우 긍정적인 성격의 소유자였음에도 '이 얼굴로 남자 친구는 못 만나겠구나' 싶었고 피부를 진정시키려고 검은팩을 얼굴에 바르고 나서는 '아, 내 얼굴이 (여드름만 가려지면) 이렇게 예쁜데'라고 가슴아파했으니까. 원래 안 좋다는 건 거의 안 하는 내가 효과는 좋지만 부작용 많다는 피부과 약을 먹은건 더 이상 견딜 수 없어서였을 것이다.


그리고, 박지선 어머님이 '평소 박씨가 질환 때문에 힘들어 했으며 박씨를 혼자 보낼 수 없어 함께 한다는 취지의 내용'을 남겼다는 이야기에 더욱 마음이 쓰렸다. 자식을 낳아보면 알 것이다. 자식의 고통이 부모의 가슴을 어떻게 후벼파는지. 나는 오늘도 아이 두 명에게 공부하라고 닥달한 못난 엄마지만, 알고는 있다. 아이에게 단순히 공부 열심히 하라고 잔소리하는 사람은 그래도 정말 행복한 시간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이상하게 눈물이 너무 나서. 박지선이 자꾸 잊혀지지 않아서 두서없이 적어보았다. 

박지선이, 그리고 박지선 엄마가 정말 좋은 곳으로 가셨기를.

그리고 박지선 아버님과 남은 가족들이 그래도 제발 잘 살아가기를. 두 손 모아 빌고 또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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