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희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척추암 선고를 받고 2004년 9월 8일 갑작스레 병원에 입원했고 2006년 5월 도합 스물 네 번의 항암 치료를 마칠때 까지, 거의 2년에 가까운 시간을 나는 긴긴 투병생활로 보냈다. 그리고 난 다시 나타났다. '샘터 2007년 1월'에서 발췌


 추천도서 첫 번째는 장영희 에세이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입니다. 장영희 교수님은 여러 가지로 유명한 분입니다. 유아기에 소아마비를 앓아 다섯 살 때까지 누워만 있었던, 두 다리를 쓰지 못하는 장애인이지만 본인의 노력으로 서강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외국에서 공부한 후 서강대 전공교수이자 번역가, 칼럼리스트로 왕성한 활동을 하셨던 분입니다.


 내가 장 교수님의 글을 처음 본 것은 약 15~ 20여년 전 월간지 '샘터'를 통해서였습니다. '샘터'와 '좋은 생각'은 당시 회사생활에 지친 제게 매달 찾아오는 단비 같은 존재였고, 샘터에서는 당시 장영희 교수님 외에도 이해인 수녀, 김용택 시인 등 많은 분들의 좋은 글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 당시 소중했던 기억때문인지 지금도 2000년을 전후한 '샘터'와 '좋은 생각'을 약 삼 사십권쯤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아직 간직하고 있는 2007년 1월 샘터에는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이라는 제목의 장영희 교수님의 글이 타이틀로 남아있습니다. 그 글은 3년만의 복귀를 알리는 신호탄이었습니다. 다들 짐작하시겠지만 그 지난 3년은 장영희 교수가 척추암 선고를 받고 도합 스물 네 번째의 항암 치료를 받은, 즉 투병생활로 보낸 시간입니다. 장 교수는 샘터에 쓴 그 글에서 "유명한 보쌈집을 소개하는 프로를 보았다. 한 손님이 목젖이 보일 정도로 입을 한껏 크게 벌리고 큰 보쌈을 입에 가득 넣고 씹어서 꿀꺽 삼키는 모습을 보여주었다"며 "그 남자의 감탄스러운 식탐, 꿀꺽 삼키고 나서 그의 얼굴에 감도는 그 찬란한 희열, 그 숭고한 삶의 증거에 마음 속으로 다짐했다"고 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난 바깥 세상으로 다시 나가리라. 그리고 저 치열하고 아름다운 일상으로 다시 돌아가리라"라고 말했습니다. 


장영희 교수는 2001년 불현듯 찾아온 유방암을 완치한지 3년 만인 2004년에 척추암 선고를 받았습니다. 위의 글은 2007년 다시 사회로 복귀해 왕성한 사회활동을 시작하려고 할 때 쓰신 글입니다. 장영희 교수는 암이 재발했을 때 "신은 다시 일어서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넘어뜨린다고 믿는다"라고 썼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고통스러운 투병을 지나면서도 삶에 대한 잔잔하면서도 아름다운 시선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 글 중의 일부분이 바로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에세이입니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는 왜 첫 추천 책으로 이미 돌아가신 분의 책을 골랐냐고 물을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저도 조심스러웠습니다. 희망을 주는 책을 소개하는 자리인데 건강하게 이겨내서 현재 우뚝 서 있는 분을 찾아야만 하는게 아닐까 고민스럽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존경해 마지 않는 많은 분도 이미 병이나 자연사로 돌아가신 분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장교수님의 책은 어떤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모습을 가득 담고 있습니다.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또한 암투병을 하면서 누군가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기 위해 쓰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저는 장교수님의 이런 마음이 바로 저같은 암환우를, 그리고 일반인들을 우뚝 서게 해준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가장 흥미진진하게 읽은 부분은 세 부분입니다. 첫째 '다시 시작하기'라는 장영희 교수의 첫 글입니다. 완성된 학위 논문만 통과되면 6년의 유학생활을 마무리 짓고 행복한 귀국을 할 수 있던 시기, 장교수는 논문 최종본이 포함된 짐 꾸러미를 도둑 맞습니다. 당시 워드프로세서가 시작 단계였고 기계치였던 장 교수는 모든 작업을 전동 타자기로 해결했다고 합니다.  6년의 세월이 담긴 완성본 논문을 잃어버리다니, 장영희 교수는 그 자리에서 기절했다고 적었습니다. 희망이 수포로 돌아간 그때 장 교수는 너무나 허무해 죽고 싶었다고 합니다. 며칠을 고슴도치처럼 움직이지도 않았던 그때 장 교수는 문득 '괜찮아, 다시 시작하면 되잖아. 다시 시작할 수 있어, 기껏해야 논문인데. 뭐. 그래 살아있잖아. 논문 따위쯤이야"라고 속삭이는 희망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정확히 1년 후 다시 논문을 끝냈다고 합니다. 장영희 교수는 살아오면서 가슴이 내려앉은 경험이라고 그때의 내용을 회상했습니다. 장교수는 그 글에서 절망과 희망은 늘 가까이에 있고 넘어져서 주저앉기보다는 차라리 다시 일어나 걷는 것이 편하다는 것을 배웠다고 독자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사랑을 버린 죄'라는 글입니다. 친구 아들이자 제자인 준영이는 같은 과목 수강생인 새침한 연숙이를 열렬하게 쫓아다니다가 어렵게 성공하여 캠퍼스 커플이 되고 영작 숙제에서도 몇 장에 걸쳐 사랑의 증세에 대해 쓸 정도가 되었지만 결국 첫사랑인 연숙에게 버림받아 힘들어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눈여겨 볼 사실은 준영이의 엄마이자 장영희 교수의 친구인 명애의 글입니다. 

 '실연당한 자식을 보는 게 이렇게 괴로울 줄은 몰랐단다. 저 싫다고 떠난 여자 애를 생각하며 밥을 남기는 못난 자식이 너무나 밉고, 그래도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척 웃고 떠드는 모습을 보면 또 너무나 마음이 아프단다. 사랑을 버린 죄에 대한 벌이 이렇게 혹독할 줄이야.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 이제도 가끔씩 문득 그 사람이 생각나고 미안한 생각이 든단다' 라고 쓰고 있었다.


 '사랑을 버린 죄' 하도 오래전 일이라 나는 까맣게 잊고 있었지만, 명애는 준영 아빠와 결혼하지기 전에 당시 민주화 운동을 하던 어떤 남학생과 열렬하게 연애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졸업과 동시에 명애는 오랫동안 사귀던 그 남자 친구와 결별하고 소위 조건이 좋은 준영 아빠랑 결혼했고, 그 남자 친구는 배반의 상처가 너무나 깊어서 자살 소동까지 벌였다.


그런데 너무나 놀라운 사실은, 알고 보니 아들 준영이가 목숨 걸고 좋아한 연숙이는 명애에게 버림받고 나서 독일로 유한 간 이후 오랬동안 보지 못했던 옛 남자 친구의 딸이더라는 것이었다. 암만 생각해도 믿기지 않고 무슨 tv연속극에나 나옴직한 이야기지만, 나는  '인연'이라는 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세 번째는 암과 관련된 두 개의 글입니다. 사실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은 장교수의 일상사를 다루고 있지만 암 관련 내용은 거의 없습니다. (아래 두 개에다 한 두 개정도 더 관련 내용이 있는 것 같습니다.)  장교수는 '오늘이라는 가능성'이라는 글에서 본인이 우연히 미국에서 유방암 검진을 받은 후 느끼게 되는 감정을 적었지만, 슬프기보다는 담담하게 쓰여 있습니다.  무엇보다 유방에 2~3기 정도의 암이 있고 곧 수술을 해야 한다는 상황속에서도 장 교수는 "그래도 최선을 다해 성실하게 살면 헛되지 않으리라는 믿음을 갖고, 늘 반반의 가능성으로 다가오는 오늘이라는 시간을 열심히 살아간다"고 마무리짓고 있습니다. 장 교수의 암과 삶에 대한 자세를 엿볼 수 있는 글입니다.


암과 관련된 마지막 내용은 '나는 아름답다'라는 제목의 에세이에 담겨있습니다.  학교에 출근하기 위해 화장을 끝내고 거울을 보면서 내친 김에 노화 현상을 관찰하던 장 교수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다가 내 눈이 습관처럼 정수리 부근으로 갔다. 와, 암만 봐도 신기한 일이다. 지난해 항암 치료 받을 때 머리가 빠져 돈짝만큼 휑하니 비어 있더니 치료가 끝나자마자 포실포실 아기 새 솜털처럼 머리칼이 나서 , 지금은 언제 빠졌었느냐는 듯, 전혀 표시 안 나게 머리털로 덮여 있는 것이다. 뿐인가. 항암제 부작용으로 입 가장자리에 심한 염증이 생겼던 것도 깨끗이 아물고, 방사선 치료 때문에 꺼멓게 탔던 목살도 한 차례 검은색 비늘을 벗더니 이제는 아주 하얗고 부드러운 새살이 되었다. 


 새로 난 머리털과 보드라운 내 목살을 만져 보고 나는 새삼 그 아름다움에 감탄했다. 있어야 할 데 머리털이 는 것은 얼마나 사람을 주눅 들게 하던가. 입가의 염증은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하지만 인체는 너무나 신비해서 그 위대한 복원력으로 다시 머리털이 나게 하고 상처를 아물게 했다. 새로 나온 머리에도 흰머리가 두어 개씩이고 새로운 목살에도 주름은 있지만, 아무리 봐도 그것들은 아까 그 아줌마의  '어린' 얼굴이나 성형 탤런트의 뾰족한 코보다 더 대견스럽고 아름답다.


암환자들에게는 보기만 해도 더할 나위없이 힘이 되는 글입니다.




* 한 줄 감상평!  

삶에서 넘어졌을 때, 그리고 다시 일어나야 할때. 힘이 되지만 그냥 평소 편안하게 읽기도 좋은 글입니다. 감동과 잔잔한 재미를 함께 느끼고 싶은 분에게 추천합니다.


* 암환자에게 선물하려고 할때 고려 사항!

(1) 암투병기가 아닙니다. 암 관련 내용은 위의 내용이 거의 전부라 암 정보를 얻기 위한 책으로는 추천하지 않습니다.

(2) 잔잔하고 감동이 있지만 혹여 장영희 교수가 암으로 돌아가셨다는 팩트를 힘들어 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넓게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아래 정보와 같이 유방암 전체 5년 생존율은 92%가 넘습니다. 재발 전이는 늘 관리해야 하는 문제이지만 너무 앞서 걱정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재발했지만 장영희 교수의 책을 원래 읽었기 때문인지, 암이나 재발에 대한 내용이 없어서인지, 다시 읽어도 그냥 감동스럽기만 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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