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라기 웹툰, 난소암 투병기 3그램의 작가 수신지의 드라마

암도 극복했는데, 암보다 더한 게 있었다. '며느라기'


'며느라기'는 바로 앞 게시물인 수신지 작가의 작품 '3그램' 서평을 쓴 후 선택한 책입니다. 27살에 난소암 경험을 '3그램'이라는 웹툰에서 보여주었던 수신지 작가가 몇 년 후에 쓴 웹툰이 바로 '며느라기'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암투병 웹툰을 썼던 작가가 이후에 쓴 작품이 투병이 아닌 일상에서 만나는 '며느라기'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제게는 선택할 가치가 충분한 책이었습니다. 이 글의 카테고리인 '암을 이긴 사람들'의 목적에도 가장 적합한 책이었습니다. (참, 민사린, 무구영을 주인공으로 드라마도 만들어진다네요.)


하지만 읽기 전의 가슴뭉클하고 따뜻했던 기대감은 웹툰 초반의 고운 결혼식 그림, 딱 거기까지 였습니다. 작품이 마음에 들지않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며느라기'는 며느라기라는 단어 하나만으로도 다양한 사람의 입장을 뒤돌아보게 만든 수작입니다. 하지만 바로 그 점이 이미 결혼 17년차를 지나가는 묵은 며느리인 제게는 마냥 즐겁게 책을 감상할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한 숨을 내쉬었던 장면입니다.  어머님 생일상을 차려드리면서 이쁨받고 싶어했던 주인공 민사린의 모습은, 고백하자면, 사실 저의 신혼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시댁에 예쁨도 받고 싶었던 주인공 민사린은 몇몇 사건과 시할아버지 제사를 통해 며느리에게 요구하는 것을 몸소 경험하게 됩니다. 내 편일거라고 믿었던 남편 무구영마저 사린이에게 바라는 건 불협화음을 일으키지 않는 착한 며느리 상이였다는 것도요.




저는 여성들이 많이 근무하는 부서의 대기업을 다녔습니다. 그분 중 한 여자 선배가 사석에서 해 주신 이야기가 지금도 기억에 납니다. 당시에는 노처녀라 불리던 30대 초반 결혼 직후 시댁에 가서 선배가 한 말은 "아이고, 어머님, 저는 잘 몰라요" 남편에게도 "나 집안 살림 잘 못해"였답니다. 저는 좀 의아했습니다. 그 분은 음식 솜씨가 뺴어난 것은 물론 일처리와 눈치까지 매우 뛰어난 분이셨거든요. 

선배는 "뭣도 모르고 예쁨 한 번 받겠다고 잘하기 시작하면 그게 바로 내 신세 망치는 지름길이야. 시댁에서 받는 칭찬은 딱 한 번 뿐이야. 그리고 그게 다 내 일이 돼. 전부 다. 차라리 못하는 사람이 어쩌다 하면 인사치레라도 듣지, 잘하는 사람은 그냥 일만 죽어라 많아지는게 바로 시댁이야. 나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아" 말했습니다. 그때는 사실 결혼 전이라 잘 이해하지 못했는데 결혼하고 나니 선배의 말이 새록새록 떠올랐습니다. 맞는 말이었습니다. 주인공 민사린이 시댁에 정성을 다할수록 그걸 하지 못하는 형님과는 달리 당연히 계속해주었으면 하는 남편 무구영과 시어머님 박기동의 발언에서는 선배의 말이 더욱 오버랩되었습니다.




남편 무구영의 형님에 대한 이야기도 많은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참고로 저희 형님은 며느라기 민사린의 형님과는 완전히 다른 분입니다. 연세도 있으시고, 집안의 대소사를 다 감내하시는 보기 드문 착한 분입니다. 하지만 제가 되고 싶은 며느리상은 아닙니다. 저는 그렇게 많은 일을 할 자신도, 넓은 마음도 없습니다.  하지만 형님 덕에 우리 새댁의 행사가 잡음 없이 여태껏 유지되었다는 것은 인정해야 하는 현실입니다. 고맙고 감사한 마음도 큽니다. 그러나 가끔씩은 형님이 이렇게 순응하지 않으셨으면, 민사린의 형님처럼 제 갈길을 갔으면 욕은 먹었서도 지금쯤은 형님이, 그리고 저희집 며느리들이 조금은 더 편해지지 않았을까 하는 이율배반적인 생각도 해봅니다.  (아마 현실은 그 일을 떠맞게 된 밑의 며느리 중 하나인 제가 불만을 토로하고 있을 가능성이 더 큽니다.)


위 장면을 보고 저는 결혼 초기의 일이 생각났습니다. 명절 전, 남편은 조심스럽게 큰형님 (큰며느리)에 대한 작은 불만을 이야기했고, 저는 그때 그랬지요. "음, 근데, 나는 형님만큼도 할 자신이 없어. 그만큼하신것도 굉장히 잘 하신거야. " 남편이 순간, 멈칫하더군요. 사실이었습니다. 저희 형님은 참 잘하시는 분이셨습니다. 물론 시댁의 눈에서 보면 그게 어떨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같은 며느리 입장에서는 그리고 타인의 입장에서는 그만큼 훌륭하신 분이 없었습니다.


또 덧붙이자면, 저의 시댁 구성원이 나쁜 분이 계셨다면 사실 제 마음은 더 편했을지도 모릅니다. 며느라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읽다보면 저희 시댁처럼, 주인공 민사린의 형님도, 남편 무구영도, 시어머님 박기동도, 아가씨 무미영도 나쁜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그 속에서 자꾸 불편해지는 자신을 바라보게 되는 건 "그럼 내가 나쁜 건가? 나만 참으면 되나?' 이런 도돌이표에 도달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그 기분은 뭐라 꼬집을 수 없을 정도로 불쾌합니다. 어쩌지 못하는 현실같아서일것 입니다. 민사린도 아마 같은 기분이었을겁니다.


실 '3그램'으로 시작해서 '며느라기'라는 책으로 서평을 진행하기로 한 건, 암투병의 끝이 행복한 일상이다라고 정의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미 묵은 며느리인 저로써는 이 책을 보고나면 "맞아, 때론 암보다 더 힘든 게 며느리였지"라는 생각이 든 것도 사실입니다.


며느라기는 읽다가 중간에 몇 번 덮었습니다. 현실을 리얼하게 그려낸 책은 때론 그걸 경험한 사람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듭니다. 나름 신세대 여성으로 그려진 민사린의 아가씨도 왜 시어머님 생일상을 새언니가 차리면 좋아하실라고 말해주는 거지? 자기는 손이 없나? 싶었고, 그런 이야기는 오빠한테 해..라는 말이 먼저 든 걸 보면 저도 역시 묵은 며느리입니다.


하지만 아가씨인 무미영 또한 또 다른 집의 며느라기 였기에. 남편과 다투는 장면이 있습니다. 사실 나쁠때면 적이랑 아군을 구별할 수 없는게 바로 시짜 붙은 일입니다.  시댁에 다시 가기 싫어하는 아가씨 무미영에게 아가씨 남편은  "일년에 한 번 있는 설인데 오늘 같은 날만 그냥 좀 들어주면 안 돼? 꼭 그렇게 싫은 티를 내야겠어?'라고 말합니다. 이때 무미영은 똑부러지게 말합니다.




살짝 속시원했습니다.



이 장면은 남자친구네 집에 인사를 간다며 과일을 예쁘게 못 깍아서 유투브를 보고 연습중이라는 후배의 고민에 선배들이 그러지 말라며 말리는 부분입니다. 

사실 저도 '니가 정말 매운맛을 안 봤구나' 싶더군요. "니가 언제 남의집에 가서 일했다고, 친정엄마한테나 먼저 이쁘게 깍아드려!"라는 말이 튀어나온 장면입니다.


그래도 민사린 형님의 모습은 인상적이었습니다.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일에도 나름 깔끔하게 선을 긋는 모습도 좋았습니다. 사실 이런 분이 앞으로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아직 윗세대가 변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분이 우리 형님이라면 '그 나머지 일은 누가 하나요?'라는 생각이 든 것도 부끄럽지만, 사실입니다. 


그래도 마음에 들었던 건




자신의 의견을 딱 잘라 말하는 당당히 말하는 형님의 모습과 (맞습니다. 어른신들의 의견은 경청해야겠지만, 결정은 우리의 몫입니다.!!!!!)




시댁 행사뒤에 힘들어하는 주인공 민사린에게 조언을 구체적으로 주는 선배의 말입니다. 물론 현실은 제대로 말귀를 알아듣는 남편이 있어야 이런 협정이 가능하다는 게 키 포인트이긴 합니다.


좋은 작품은 사람에 따라, 보는 상황에 따라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며느라기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한 작품입니다. 변화하는 시대상 속에서 며느리들의 마음을 여과없이 잘 담아낸 수작입니다.


암환자에게 추천한다면!

암환자에게는 수신지 작가가 쓴 난소암 투병웹툰 '3그램'과 같이 선물하세요. "27살에 난소암 3기 였던 작가가 현재는 당당하게 일상의 고민을 토로하며 잘 살아가고 있다. 너도 더 잘 살거야"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주기에 충분합니다. 건강하게 잘 살아있다는 것만으로 큰 위로와 감동이 됩니다.


다만, 책 내용은 며느리의 입장에서는 "암을 극복했는데, 암보다 더한 게 있었지, 참, 내가 깜박했네"라는 생각을 해볼 수 있습니다. 묵은 며느리인 제가 너무 심하게 표현한 게 아닌지 모르겠습니다만 한국의 며느리라면 흔히 겪는 상황이기에 읽으면서 스트레스가 확 풀리는 책은 아닙니다. 하지만 다양한 시선에서 다른 사람의 입장을 생각해 보게 하는 훌륭한 작품입니다. 


일반인, 특히 결혼 전이나 결혼 10년차 미만 부부의 필독서로 추천합니다.

제 카테고리는 암환자로써 암환자들에게 희망을 주는 책을 소개하는 자리지만 '3그램'과 같이 선물하지 않는다면, 암환자보다는 결혼을 앞둔 젊은 남녀나 결혼 10년차 미만의 부부가 함께 보는 책으로 '며느라기'를 적극 추천합니다. 현실이 리얼하게 반영된 웹툰이라 꼭 한 번씩 보세요. 결혼을 잘 헤쳐나가기 위해서라도 꼭, 정말 꼭 필요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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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라기 작가 수신지의 27살 난소암 투병 웹툰 '3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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